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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사

천일야사2회 황희 이재식 김경응 만력제 신태건 안준하

JEJEJE 2020.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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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의 상징 황희의비밀

 

 

조선시대 세종시절 좌의정으로 지내던 황희. 청렴하고 검소하기로 유명했다.

황희를 청백리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 황희가 유감동스캔들에 휩싸이고 만다.

 

유감동스캔들은 부녀자인 유감동이 조정 대신들과 사통을 하고 사통부를 작성하였고, 고발을 당하자 그 사통부를 세종이 보게 하였다. (유감동은 부녀자였을 때 겁탈을 당해 고발하였으나 정절을 잃은 건 네 탓이라고 하여 열받아서 조정 대신들과 사통을 하였고 들키케 되자 주색정치를 벌이는 조정대신들도 함께 벌하여 달라고 청하였다. 하지만, 유감동은 후에 곤장을 맞고 노비가 되었으나 조정 대신들은 관직에서 파면하는 것이 되었다.)

근데 그 사통부에 황희의 '황'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유감동과 사통한 이는 황희의 첫째아들 황치신이었다.

(나라의 녹을 먹는 이는 술과 노름 여자를 가까이하면 안된다고 하였으나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아들이었다.)

황희는 아들 건사를 잘 못 하였으니 벌하여 달라고 파직시켜 달라고 요청을 하였으나, 세종은 그런 황희를 놔주지 않았다.

황희의 사위 서달이 살인을 저지르게 되어 가정을 잘 돌보지 못한 자신이 어찌 백성을 돌보냐고 황희는 또 파직시켜 달라고 하였고 세종은 관직을 파면했다.

하지만 세종은 다시 돌아오라고 서찰과 진수성찬을 내주고 한달만에 복귀를 시켰다.

성군을 만들고 나라를 태평성대로 이끌었던 충신.

 

(세종: 이재식 / 황희: 김경응  / 황치신: 배건식 / 황보신: 김현민 / 황중생:문성환 / 서달: 오형준)

 

 

조선황제로 불렸던 명나라 13대 황제 만력제의 선택

 

1592년 최악의 임진왜란.

왜놈들이 진격해오자 선조는 명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였는데 그 시기에 만력제는 황제폐업을 하였는데...!!

그 이유는 사소한 일조차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었던 만력제 ..

 

황제보다 더 칭송받았던 장거정. 이 또한 만력제에겐 심리적 압박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장거정이 재물을 탐하였단 상소가 올라와 장거정의 관직을 박탈하고 집안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였다.

믿었던 정거정의 배신으로 인해 힘든데 황후 사이에서 적장자인 후사를 봐야한다고 황태후의 압박이 만력제를 더 힘들게 하였고, 사이가 좋았던 정귀비 사이에서의 세번째 아들을 태자책봉 하려는데 황태후가 또 반대를 하고 나왔다.

그때 열받은 만력제는 더이상 황제역활 하지 않겠다며 때쳐친 것이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제파업!

황제파업 5년차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힘든 시기

만력제가 꿈을 꾸는데 본인은 관우, 선조는 장비로 나오는데 그 꿈으로 인해 조선으로 파병을 해줄 것을 결정하게 된다.

나라의 어려움을 보고 약 30년 만에 다시 황제자리로 돌아오는데 이미 쇠퇴해져버린 명나라... 만력제 복위 24년 뒤 명나라는 사라지게 되었다.

 

 

(만력제역: 신태건 / 선조역: 안준하 / 장거정역: 안민상 / 정귀비: 민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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