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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사

천일야사105회 고려를 뒤흔든 상소문 조민서 안준하 김장환 의상대사의 못다한 사랑 김현민 방초록 안동부사 이현보의 이중생활 오종석

JEJEJE 2020.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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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사 105회
고려를 뒤흔든 상소문

대부경 박유
상장군 김문비
김문비의 아내 박씨
대장군 김혼

고려 제 25대 충렬왕 재위기
대부경 박유는 공녀문제를 처리할겸 법으로 첩을 두게 하자는 상소를 올리고 온 고려의 여인을 적으로 두게 된다.

대부경 박유 안준하

남성들과 동등한 지위를 누렸던 고려에 박유의 주장은 얼토당토 하지 않은 것이었다.
“대소 신료들에게 처를 여럿 둘 수 있게 하고 평민은 1처1첩을 둘 수 있도록 서자도 적자와 같이 벼슬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고려사열전

금슬이 좋은 상장군 김문비와 아내 박씨는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충렬왕은 아직 시기상조라 하고 여인들의 반대에 보류된 첩제도 법제화
몇달 후
김문비 아내 박씨 부인은 그토록 바라던 임신에 성공하고 상장군인 김문비는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재산상속도 동등하게 받고 경제활동도 가능했던 고려 여인들
생각지도 못한 남편의 사망소식을 접한 박씨부인 충격으로 어렵게 갖은 아이마저 잃고 말았다..
그런데 상장군이 첩 집에서 죽었다는 말이 들린다.
박씨부인은 남편이 죽은 후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박씨부인
2년 후
저잣거리에 나간 박씨부인의 눈에 귀여운 아이가 보이는데 아이의 아버지는 대장군 김혼이었다.
김혼의 부인이 작년에 죽었다는 것을 알게되고 동병상련을 느끼게 되는 박씨부인이었다..
아내를 잃은 김혼과 남편을 잃은 박씨는 아이를 매개로 가까워지고 마음을 나누다가
“박씨가 당신에게 아들 하나를 얻어 기르고 싶다 하니 김혼이 그녀와 관계하였다.” -고려사절요
충렬왕은 박씨부인과 대장군을 불러 들이고 그 둘을 혼내는데 ..

박씨부인과 김혼

얼마 전 임신 소식을 알리기 위해 김혼을 찾아갔던 박씨 부인은 대장군과 박유가 대화하는 것을 듣게 되고 ....

김혼은 박씨부인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되고 혼인을 하자 하지만
박씨부인은 아이가 갖고 싶다고 했지 혼인은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충렬왕은 묻는다. 혼인을 하겠느냐? 벌을 받겠느냐?
박씨부인은 끝까지 혼인을 하지 않겠다한다.
대장군은 외딴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고 박씨부인도 죽주라는 곳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충렬왕은 첩제도화를 무산시켜 버렸다.

(박씨부인 조민서,박유 안준하,김혼장군 김장환,충렬왕 배건식,김문비장군 이관성,박유부인 이미애)

 


천일야사
의상대사의 못다한사랑

당나라에서 의상대사가 유학하던 시절
의상대사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놀라게 된다...
그여인은 출가 전 사랑하던 여인이었는데 지금 승려와 당나라 여인의 모습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신라 선덕여왕 재위기
의상대사가 신라의 김일지였던 시기

김일지

“의상대사의 이름은 김일지로 김한신 장군의 아들이며 진골 귀족 출신이었다.” -삼국유사
김일지가 선택한 여인은 몰락한 귀족의 딸 묘화였다.

묘화

이 둘 사이에 낀 진옥
아버지의 권세를 이용해 김일지와 혼인을 하려고 한다.

진옥

아버지의 설득에도 김일지의 묘화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상대등은 딸을 위해 묘화를 당나라의 공녀로 보내버리고 일지는 이 일을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이별을 하게 되었다.
“묘화가 공녀로 가던 중에 바다에 몸을 던졌다.” -송고승전
몇달 후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김일지는 묘화를 찾지만 .. 묘화가 죽으며 사랑이 끝나게 된다.
몇달 후
진옥과 김일지의 혼례날
김일지는 승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김일지(의상대사)가 출가한 후 당나라로 갔다.” -송고승전
“당나라로 간 데는 묘화의 넋을 달래려는 이유도 있었다.” -송고승전
묘화가 물에 빠졌을 때 태수가 도와줘 살아난 묘화..묘화는 태수 유지인의 수양딸이 되어 있었다.
일지랑이 아닌 의상대사는 포기하지 못하는 묘화를 밀어내고 결국 곁을 떠나고 만다.

(의상대사 김현민,묘화 방초록,진옥낭자 나지현,당태수 김현동)



천일야사
안동부사 이현보의 이중생활

조선 중종 재위기
과거급제 후 한양으로 떠나게 된 이현보

이현보 오종석

성균관 유생에서 종3품 고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1년 후 충주목사로 일하게 된 이현보
백성들은 이현보에게 감사함의 표현으로 선물들을 보냈는데 감사를 온다고 한다.
이현보는 들켜서 안될 것들을 모아 태우는데
늘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이현보
“그는 거두기 어려운 세금은 문서를 불태워버렸다.” -농암선생연보

이현보는 어머니께 바쁘다는 이유로 답신보단 돈으로 답변을 대신했는데 ..
회신이 없자 어머니가 충주로 찾아오셨는데 바빠서 일만하는 이현보
백성들 챙기느라 정작 내 부모에겐 소홀했던 아들이었다.
이현보는 중종에게 찾아가 안동으로 보내주지 않으면 사직을 하겠다 하는데...
여태 진정한 효를 하지 못한 것을 깨우치고 효를 행하러 부모님 곁으로 가겠다고 한다.

(이현보 오종석,아전 전효석,이현보모 윤태희,춘식이 조기태,중종 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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